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외식으로 돼지갈비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숯불이 들어오고 구멍이 송송 뚤린 석쇠 불판이 올라가면 부모님은 뼈가 붙은 돼지갈비를 칙 올리셨습니다. 좋은 냄새와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어린 마음에 젓가락을 물고 언제 고기가 익나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변한 것은 세월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이제는 좀처럼 외식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에게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저희에게 결코 소홀하지 않으셨는데 말입니다. 이번 주 주말엔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습니다. 추억 강제소환의 주인공, 일월산숯불갈비입니다.
호기롭게 주문은 했지만 배달 갈비는 처음이었습니다. 봉투 안에 켜켜이 많이도 쌓여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많나 싶어 안을 한 번 들여다보았습니다.
크게 이탈하지 않고 제 자리를 잡고 있는 내용물들.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꺼내어보면 이렇습니다. 갈비 소자 하나와 냉면 1인분 하나를 시켰는데 도착한 건 렌즈 하나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많은 음식들이었습니다. 행복한 마음과 이걸 모두 뜯어야 한다는 귀찮음과 지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어지럽게 공존하였습니다. 하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 순간 일단 다음에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양파와 양념게장입니다. 양파절임은 모든 고기 종류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조연입니다. 양념게장은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다음 기회를 노려봅니다.
곁들여 먹을 여러가지 기본 반찬과.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줄 파채무침입니다. 갈비를 먹으러 가면 꼭 상추겉절이가 함께 나옵니다. 여러번 리필해 먹을 정도로 고기를 먹을 때 단짝 역을 톡톡히 하고 있고, 또 대구에서는 사투리로 이것을 재래기라고 많이 부르는데요. 일월산숯불갈비에서는 이 재래기 대신 파채 무침이 나옵니다.
신선한 상추. 억세지 않은 부드러운 상추였습니다.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식당 된장입니다. 두부와 애호박을 총총 썰어넣어 먹음직스러워 보이네요.
살얼음이 동동 떠있는 것이 아닌 육수가 살얼음 그 자체인 칡냉면입니다. 냉면과 돼지갈비의 조합이 최고인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지만 이 집에서 갈비를 먹을 땐 칡냉면은 꼭 같이 드셔야 합니다. 마치 이 기분 천상의 하모니.
은은한 불향과 단짠의 갈비 양념은 애타게 밥을 부르는 것만 같습니다. 갈비와 탄수화물의 조합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조합입니다. 고기가 두툼함에도 불구하고 퍽퍽하지 않고 쫄깃합니다. 한 입 먹어봅니다.
사진으로는 고기가 제법 건조해보이는데요. 먹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밥 한 입 고기 한 입으로 갈비의 맛을 파악한 다음 얼음이 녹기 전에 냉면을 처리 해 줄 겁니다.
사실 냉면 맛은 특별할 건 없습니다. 다른 집과 크게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얼음이 녹지 않고, 면발이 퍼지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배달냉면임을 감안했기 때문입니다. 육수가 녹고, 면발이 퍼진 채로 도착한 냉면을 수도 없이 먹어본 저로서는 엄지를 치켜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기와 양파를 함께 먹어봅니다. 양파의 알싸한 맛이 자칫 갈비에 물릴 수도 있는 혀를 다시 리셋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이후로 본격적으로 끝도 없이 먹었던 것 같습니다. 냉면과 같이 먹어도 맛이 좋고, 고기만 먹어도 맛이 좋고, 쌈을 싸먹어도 맛이 좋은 갈비는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특별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 먹고 엄마한테 전화해야겠다. 잘 먹었습니다.
가격은 이렇습니다. 갈비 소자에 칡냉면 한 개 해서 26,000원입니다. 고기가 양이 매우 많았어서 이 가격으로 비싸다 싸다는 잘 판단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성비를 판단하기는 잘 어려웠지만 매우 만족하며 먹었기에 또 먹을 의사 100프로 입니다. 옛날 생각 하면서, 잘 먹었습니다.
맛 ★★★★★
양 ★★★★★
가성비 ★★★★
서비스 ★★★★★
모든 자취생들이 배불리 먹는 그 날을 기대하며 포스팅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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