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먹는데에 있어선 예민한 편입니다. 예민하다면서 이렇게 배달만 주구장창 먹는 것이야말로 모순이긴 한데, 일단 먹고 난 뒤 까탈을 부리는 측면에서 예민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돈까스가 그렇습니다. 두툼하게 썬 헤비한 돼지 고기와 튀김옷의 밀가루와, 잔뜩 머금은 기름은 기어코 저의 아랫배를 무겁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돈까스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요. 유일하게 방문을 하거나 배달을 해 먹는 돈까스 집이 있습니다. 마이카츠입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마주하는 눈빛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배달인생 수년 차, 수많은 가게의 로고들을 이 자리에 앉아 마주해 왔지만 내 눈을 이다지도 똑바로 쳐다보는 로고는 네가 처음이야.
손바닥만한 돈까스가 4조각이 왔습니다. 1인분인 줄 알고 설레셨을 텐데요. 홈카츠라고 하는, 양이 더 많고 오로지 돈까스만 오는 메뉴입니다. 물론 1인분의 양이 태평양과도 같은 저의 간에 기별도 안 가서 홈카츠를 시킨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른 쪽에 있는 그릇은 히야시소바입니다.
흔히들 아시는 맛의 김치입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돈까스를 먹다보면 김치가 끌릴 때가 많은데요. 마이카츠의 돈까스를 먹을 때면 이상하게 김치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느끼하지 않아서일까요.
소바에 넣을 간 무와 와사비입니다. 와사비는 물에 개어 쓰는 가루 와사비입니다.
곱게 빻은 깨가 듬뿍 들어있는 돈까스 소스입니다. 많이 찍어먹지 않아도 충분히 간을 다 해주는 소스입니다.
바삭함이 사진을 뚫고 나옵니다. 이 집 돈까스의 튀김 옷은 오늘 입천장에 상처 좀 내겠다 하고 막무가내로 먹는다면 입천장에 누가 빗자루 질을 하고 갔다 여겨질 정도로 바삭한 편입니다. 뚜껑이 닫혀진 채로 배달이 됨에도 불구하고 눅눅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름기도 느껴지지 않고 바삭함을 유지하는 탓에, 다른집보다 더욱 고소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돈까스를 먹기 전에 소바부터 열어봅니다. 소바도 적당히 달큰하면서 맛있습니다. 밀가루 면은 좋아하지 않지만 소바면이나 쌀국수 면은 좋아하는 편이라 무리 없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저 돈까스 네 쪽과 이 소바를 다 먹는다며 혹여 돼지는 아닌지 의심하실 수도 있는데요. 돈까스 나머지는 냉동해두고 1쪽만 먹을 예정입니다. 소바와 함께요.
간 무우와 와사비를 넣어줍니다. 사실 저는 무를 많이 넣지 않는 편인데 사진상 미관을 위해 찍어봤습니다. 잘 저어서 호로록 먹어보겠습니다.
소바를 드시면서 얼큰하다고 느끼신 적 없으신가요? 오히려 해장을 하기 좋은 콩나물국이나 매운 탕 종류 보다 저는 이 소바가 가슴 안 쪽부터 시원하게 씻어주는 것 같더라고요.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면 으아아~소리가 절로 납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지 않다고 하니 저만 소바로 해장하는 걸로 치겠습니다.
돈까스의 단면입니다. 두툼한 편이고 얼핏 봐선 살결이 퍽퍽해보이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가 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이가 약한 어린 아이도, 반대로 난지 오래 되어 이가 약한 어르신들도 남녀노소 함께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돈까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스를 듬뿍 찍어 먹어줍니다. 바삭하고 달콤하고 고소하기까지 하니 다른 화려한 음식보다도 이 단촐한 돈까스가 완전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조각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먹고 나면 든든할 정도의 두께입니다. 소바와 함께 먹어주니 비싸지 않은 금액으로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만찬이 아닌가 싶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가격은 이렇습니다. 참고로 마이카츠라고 하는 메뉴가 있는데, 1조각이 나오고 5,500원입니다. 돈까스를 디저트로 먹었음 싶을 때 먹으면 되는 메뉴일 것 같고, 더블카츠라고 2조각이 오는 메뉴가 8,500원입니다. 더블카츠가 적당히 배부를 수 있는 메뉴이고 이 메뉴들은 밥이나 샐러드 등이 같이 오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고로, 집에 왠만한 반찬들이 다 있다면 홈카츠를 먹자는 게 오늘의 교훈입니다.
맛 ★★★★★
양 ★★★★★
가성비 ★★★★★+★
서비스 ★★★★★
전국의 모든 자취생들이 배불리 먹는 그 날을 기대하며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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